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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재연구소

“제연, 자기 감리 현장만 빼고 모든 현장 불량” 본문

About fire risk

“제연, 자기 감리 현장만 빼고 모든 현장 불량”

kfsl 2024. 5. 9. 09:37

출처 : 세이프투데이(http://www.safetoday.kr)

김진수 한국소방기술인협회 회장

 

 

김진수 한국소방기술인협회 회장(공학박사, 건축기계설비기술사, 소방기술사)은 지난 1월30일 제연 오딧세이 개정판인 ‘제연 총론(The Outline of Smoke Control, 도서 출판사 재웅플러스)’을 출간했다. 


이 책은 소방 분야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제연설비’를 총정리한 책이다. 세이프투데이는 지난 4월15일 이 책에 대한 소개 기사(https://www.safetoday.kr/news/articleView.html?idxno=86079)를 세이프투데이에 게재했다. 

이 책을 소개하면서 저자인 김진수 회장에게 ‘소방 제연설비’에 대한 칼럼을 부탁했다. 김 회장도 흔쾌히 수락했고 4월30일부터 4번으로 나눠 세이프투데이에 연재키로 했다. 

칼럼은 ▲ ‘국내 제연의 현실’ ▲ ‘차압제연의 기술적 문제’ ▲ ‘거실제연(공간배연)의 문제’ ▲ ‘합리적 제연을 위한 고민’이라는 내용 순으로 4번에 나눠 세이프투데이에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 주> 

 

제연기술은 국제적으로도 접근하기 쉽지 않은 주제다. 접근하기 쉽지 않은 이유는 그 이론이 어렵다기보다는 건물의 구조와 화재 상황, 그리고 외기와 바람의 영향까지 고려해야 할 조건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한 여러 가지 조건을 적용하여 해석하는 방법에 대해 꾸준한 교육이 이어지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소방기술자들의 모임으로서 가장 권위 있고 활동이 활발한 단체인 SFPE(Society of Fire Protection Engineers)의 세미나에서 시대적 과제인 배터리 문제 다음으로 많이 등장하는 주제다.

배터리 화재는 거주 공간에 직접 미치는 영향이 작고 기술의 발전에 따라 10년 후에는 어쩌면 자연스레 소멸하게 될 거라는 희망이 있다. 

그러나 제연은 모든 화재에 부수되며 물질적 문제가 아닌 오직 엔지니어링의 문제여서 그 어려움이 앞으로도 오래 지속될 수 있다.

국내에서 제연은 엔지니어링 차원을 넘어 도무지 풀리지 않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느껴지며, 이제 기술자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진 것 같다. 그러나 필요한 것은 정교한 기술이 아니라 시각의 전환이기 때문에 언제든 알렉산더가 재림하면 즉시 풀릴 것이다. 

국내 엔지니어링 현장에서 제연은 가장 활발한 연구 개발과 논의의 대상이었고 수많은 특허가 등록됐지만 그 신뢰성이 높아졌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러한 불신감은 국제적으로 어쩌면 우리만의 실정인지도 모른다. 

국내에서 흔히들 거실제연이라고 불리는 공간배연은 화재현장에서 발생한 연기를 효과적으로 배출하는 단순한 목표를 추구하기 때문에 복잡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다만 효과적인 배연 필요량을 산출하는 것이 쉽지는 않아서 우리와 같이 편리하기 그지없는 규약 설계방식의 효용에 대한 신뢰는 높지 않다. 

NFPA에서는 대상에 따라 연기 발생량을 별도로 산출하는데, 우리의 거실제연에는 배연량 산출의 어려움보다 더 복잡한 업역의 문제가 숨어 있다. 이것은 다음 차에 다룰 것이다.


건축구조에서 수직으로 길게 구성된 공간을 샤프트라고 하는데, 계단실이나 승강로 또는 여러 가지의 설비 수납공간(PS, EPS, TPS 등)들이 그에 해당한다.

고층건물 피난경로를 이루는 수직샤프트에 연기의 침입을 막아 피난안전을 도모하는, 이른바 ‘급기가압제연’ 또는 ‘차압제연’은 연기의 발생량에 관계가 없어 접근이 쉬워야 하지만 미세한 압력차이를 제어하는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다. 

소방기술 선진국의 차압제연 방식은 수직샤프트 가압이지만 우리는 보통 개별 부속실이나 승강장 등 층별 가압이 지배적이어서 차압의 형성 조건이 다르다.

우리가 서구 선진국과 달리 층별 가압을 하게 된 것은 우리의 건축법과 소방법이 애초 일본의 것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1982년에 고시된 소방기술기준에 이미 제연설비에 대한 규정이 있어 주로 급배기 방식 또는 배연창 방식을 적용해 왔으며, 서울 도심의 30년 이상 된 고층건물에 그 방식의 시설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그러한 구식 방식의 효용이 우리에게는 이제까지 차압제연보다 우월한 것으로 보인다. 

차압제연 기술은 1995년에 영국의 BS5588-Part4(1978년 판)의 내용을 축약하여 「특별피난계단 부속실 및 비상용승강기 승강장의 제연설비 기술기준」(이하 ‘차압제연 기준’)이 만들어지면서 도입됐다.

당시의 영국기준에도 샤프트 가압이 원칙이고 부속실 가압은 계단실과 동시가압일 때 유효한 것이었으나, 우리는 당시까지 건축법규에 규정된 층별 부속실 제연규정을 따라왔기 때문에 그러한 층별 제연을 합리적으로 대체할 의견도 경험도 부족한 데다, 당시 계단실 1층이 개방된 구조여서 과감히 샤프트 가압으로 전환하지 못했고, 비상용승강기 승강로는 아예 승강장 가압만을 규정하여 층별 가압 방식이 관행으로 굳어버렸다. 

그것이 어떤 문제를 야기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채로.

당시에는 연돌효과(stack effect)에 대한 문제가 건축적으로만 큰 문제였을 뿐 제연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 샤프트 가압과 상부 과압배출을 주된 방식으로 하는 서구식 시스템에서는 연돌효과의 영향이 크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BS5588이나 NFPA에서도 눈에 띄는 자료가 많지 않았다.


연돌효과 문제는 이론보다 체감을 먼저 해야 그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는데, 고층건물에서 연돌효과를 겪어본 사람은 지금도 많지 않다. 그 사정은 제연기술의 진행방향을 주도하는 소방기술사들과 공무원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어서 제연기술 논의에 장애가 되는 고정관념을 넘을 수가 없다.

제연에서 다루는 차압의 범위는 그리 크지 않다. 출입문에 작용하는 차압이 너무 작으면 연기의 틈새 침입을 막을 수 없고, 차압이 너무 크면 출입문을 여닫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그 적정범위는 대개 10~100 Pa을 벗어나지 않는다. 

대기압이 대략 십만 Pa이니 대기압의 1천분의 1 내지 1만분의 1 정도로 극히 미세한 범위다. 이것은 제연설비로써 생성한 차압이 결과적으로 10 Pa인 경우 역차압이 10 Pa만 발생해도(풍속 3~4 m/s의 산들바람만 맞아도) 연기가 역류하여 피난경로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미세차압을 투박한 송풍기와 방화문으로 적절히 제어하는 것은 40여 년 전에 쏘아올린 보이저 우주선의 구식 컴퓨터 기억장치가 영하 200℃로 냉각되는 심우주(deep universe) 환경에서 아직도 정상가동하며 예정된 경로의 항행을 제어하는 것에 비견할 만하다.

그런데 우리의 제연은 보이저 우주선처럼 그렇게 예정된 성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관측되지 않는다. 어쩌면 망원경 관측범위 밖으로 벗어나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받는 실정이다.

아직도 우리의 차압제연은, 자기가 감리하는 현장 하나만 빼고 모든 현장에서 적절한 성능조절이 안 되는 불량이라고 모두 얘기하는 이상한 시스템이며, 현장에서 제기하는 클레임에 대해 어떤 설계자도 적절히 해명하거나 자신 있게 수정설계를 제시해 주지 못하는 혼란스러운 시스템이다.

우리의 차압제연은, 차압조성에 성능을 맞추면 방연풍속이 부족하고, 방연풍속에 성능을 맞추면 차압의 과잉으로 출입문의 여닫음에 장애가 생기는 풍선효과 시스템이다.

그 풍선을 다루는 수많은 수요에 따라 수많은 자료와 교육이 넘쳐났다. 그러나 제연이 순수한 엔지니어링의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소방업계의 관심은 법을 피해가는 요령의 측면에만 집중돼 왔다. 이제 요령이 소진되어 더 이상의 습득이 불가능해지니 제연에 대한 관심은 식어버린 것 같다.

왜 이런 일이 생기고 또 지속되는 것이 무한 반복되는가? 해법은 없는가? 다음 몇 차에 더 논의해 보고자 한다.

2024년 4월30일

김진수 한국소방기술인협회 회장

출처 : 세이프투데이(http://www.safetoda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