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재연구소
제연설비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는’ 불법 시설 본문
출처 : 세이프투데이(https://www.safetoday.kr/)
김진수 한국소방기술인협회 회장
소방 제연설비에서 차압제연의 본질은 차압이다. 우리는 이 차압의 기준조차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
NFPA92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건물에서 제연구역(계단실, 승강로) 출입문 안팎에 1700℉(927℃) 차이가 있을 때, 즉 화재 최성기 상황에서 화재공간 출입문에 12.5Pa 이상의 차압을 형성토록 하고 있는데, 연돌효과와 바람 등 어떤 조건 하에서도 마찬가지다.
비화재층의 문이 열려도 화재층에서 연기가 새어나오면 안 되기 때문에 설계에서 고려한 수량의 문이 열린 상태에서 기준차압이 유지되어야 한다.
우리가 도입했던 영국표준 BS5588-Part4는 1978년 판이다. 그 주된 내용은 기준차압이 모든 층에서 50Pa±20%(40~60Pa)이고, 피난이 개시되어 화재층의 출입문이 열린 경우에도 다른 층 출입문에 걸리는 차압을 기준차압의 70%(28Pa) 이상 유지되도록 하였다.
부속실 가압을 병행하는 경우에는 부속실에서 계단실로 누설되었다가 화재층의 열린 출입문으로 우회유입하는 공기가 방연풍량의 상당량을 감당하고 그 우회유입량만으로 부족하면 조금 더 보충하여 방연풍량을 충당토록 하였다. 거기서 보충량(extra air supply)이라는 개념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NFPA92A(1986년 발표)보다 9년 먼저 발표된 세계 최초의 기준이 필연적으로 갖는 미숙함을 그 후 두 차례에 걸쳐 개정함으로써 보완하게 된다.
첫 번째 개정은 최초 발표 20년 후인 1998년에 있었다. 그때 기준차압의 70% 이상 유지 규정이 없어지고 피난층 계단실의 외부 출입문을 연 상태에서도 모든 층 계단실/부속실 출입문에 고정값 10Pa 이상의 차압이 잔류하도록 변화되었다. 10Pa은 사실상 구체적으로 측정 가능한 최소 압력이다. 보충량 개념도 그때 없어졌는데, 우리 화재안전기준에는 아직도 남아 설계자들을 몹시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
그 후 2005년에 유럽통합기준으로 개편될 때에는 내용에 큰 변화가 없었으나 2022년에 큰 변화를 맞는다. 기준차압이 30Pa로 낮아지고 잔류차압 조건을 삭제함으로써 차압과 방연풍속 둘 중 하나만을 갖추도록 규정하였다. 다만 높이 60m를 넘는 건물에서는 시뮬레이션을 공식화하여 연돌효과를 분석하도록 하였다.
우리도 비개방층 차압을 없애야 한다는 의견이 줄곧 제기되어 왔으나 20년도 더 전(1998년)에 폐기된 70 % 제한이 뚜렷한 근거 없는 보수적 고정관념에 의해 다수의견으로 유지되어 왔다.
그런데 우리의 기준차압이 오래 전에 이미 NFPA92를 인용하여 스프링클러가 있는 건물에서 12.5Pa로 축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비개방층 차압을 40Pa의 70%인 28Pa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아직도 나온다. 이 정도의 고정관념을 가리키는 표현은 보수가 아니라 수구라고 해야 옳다.
여기서 고정관념이라 함은 현재 익숙한 관념만을 움켜쥐고서 시비 가리기를 거부하는 맘 편한 의식을 말한다.
또 하나의 기본개념이 방연풍속이다.
방연풍속은 화재실의 출입문이 열릴 경우 그 열린 출입문으로 연기가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불어 넣는 반대기류의 최소 속도를 말한다.
NFPA에는 방연풍속 개념이 없다. 차압제연은 초기 피난 시에 피난경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그 시점에서는 연기가 피난하는 사람을 따라 피난경로로 들어갈 만큼 많지 않으며, 오히려 기류를 화재공간으로 불어넣으면 화염과 연기를 교란시켜 소화활동에 장애가 된다는 개념이다.
따라서 화재(연기)공간으로 유입되는 공기는 어떤 경우에도 유속이 1m/s 이내이어야 하며, 화재최성기에는 소방관의 활동 이외에는 문이 열리지 않으므로 그 닫힌 문 틈새로 연기가 새어나오지 않도록 적정 차압만 유지되게 규정하는 것이다.
우리 화재안전기준은 방연풍속을 0.5~0.7m/s로 정하고 있는데, 이것도 BS5588-Part4의 1998년판에서는 0.75~2m/s로 달라졌고, 이제 다시 개정된 유럽기준에는 건물 구조와 용도에 따라 1~2m/s로 되었다.
용도에 따라 달라지는 방연풍속의 성격에 대해 우리는 미국도 유럽도 아닌 46년 전(1978년)의 영국기준을 추종하고 있다. 일본은 방연풍속에 대해 자기들 고유의 기술을 주장하여, 소방관들이 소화활동 중 문을 40cm 쯤 열고 그 틈으로 현장을 들여다볼 때 그 열린 틈을 통해 나가는 풍속이 4m/s 이상 되도록 산식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고유한 기술적 주장도 없고, 26년 전에 있다가 지금은 삭아버린 낡은 동아줄을 아직도 붙들고 있다.
방연풍속은 제연공간의 출입문 바깥에 외기로 통하는 경로가 있어야 조성할 수 있다. 냉동냉장창고처럼 특수하게 기밀처리를 한 공간이 아니어도, 요즘 짓는 대부분의 건물 외벽의 기밀도는 대단히 높아서 부속실이나 승강장 제연공간을 아무리 가압해도 압력이 빠져나가지 않으므로 방연풍속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방연풍속을 정하는 유럽기준에서는 옥내의 압력을 외기로 배출할 수 있는 배출장치를 설치하도록 정하고 있고 우리도 1995년에 그것을 도입했는데, 아파트는 옥내에 배출설비를 설치하기가 어려우므로 배출설비의 설치를 면제했다.
아파트에 배출설비 설치는 면제해 놓고 방연풍속을 면제하지 않았으니 건축물 대부분이 아파트인 현실에서 방연풍속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결국 아파트의 외벽 창문을 열어놓고 방연풍속을 억지로 만들어 시험하는 변칙이 성행하여 전국의 아파트에는 모두 제연설비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불법시설이 되고 말았다.
아파트의 방연풍속에 대해서도 부정적 의견이 많지만 아직 과감한 진보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시설의 설계⋅감리⋅T.A.B 등 모든 분야의 책임을 다 져야 하는 소방기술사들이 방연풍속의 필요성에 대한 논리나 배출설비 설치방법에 대해 뚜렷한 방법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현장에서도 억지로 꿰맞추는 업무를 하면서도 방연풍속의 삭제에 동의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차압제연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일본식 부속실 제연이다. 샤프트를 가압하면서 부속실에서 배출하면 설비나 공간의 부담이 없다.
더구나 일본은 부속실 차압제연이 2011년에야 비로소 법적 설비로 인정되었고, 그 이전에는 심의를 통해 국토교통부 장관의 특별허가를 얻어야 하는, 이른바 특허시설이었다.
우리는 일본보다 훨씬 먼저 차압제연을 보편화하면서도 일본의 건축개념에 종속되어 층별 부속실 제연에 묶여 있는데, 지금 현실에서 일본에 대한 사대주의가 작용하는 것은 아닐 것이고, 원론적 지식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합리성을 추구하기보다 현실 법규의 자구적 테두리 안에서 수구적 고정관념으로 평온무사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연돌효과다.
연돌효과는 혹한기 옥내 난방을 하는 상황에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준공 당시의 상황은 대개 혹한기가 아니고 설혹 혹한상황일 때에도 옥내 난방을 적극적으로 할 때가 아니므로 연돌효과가 심각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엔지니어링 관계자들이 그 심각성을 알지 못한다.
연돌효과는 옥내외 온도차에 따른 결과이므로 샤프트 내부 온도를 낮추는 것이 최선의 대책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샤프트에 대량의 외기를 하부에서 주입하고 상단에서 배출하여 샤프트 내부의 공기를 밀어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계단실과 승강로 가압이 그러한 원리에 가장 부합하는 방식이고 또한 피난 또는 소화활동의 최종 경로를 절대 보호하는 기본 원칙에 다가서는 일인데도 오히려 승강로 가압을 철폐하려는 이상한 움직임이 있다는 불길한 소식도 들린다.
“제연, 자기 감리 현장만 빼고 모든 현장 불량”
김진수 한국소방기술인협회 회장
윤성규 기자 입력 2024.04.30 08:09
https:/ www.safetoday.kr/news/articleView.html?idxno=86462
2024년 5월7일
김진수 한국소방기술인협회 회장
출처 : 세이프투데이(http://www.safetoda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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