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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 제연설비 문제 ‘공조와 소방 분리 설계’ 때문

kfsl 2024. 5. 20. 13:45

출처 : 세이프투데이(https://www.safetoday.kr/)

김진수 한국소방기술인협회 회장

 

국내 소방 제연설비는 여러 가지 문제를 노정하고 있으나 기술적 문제보다 고정관념의 문제가 더 크다.

국제적 관점으로 한국만이 유독 다양한 제연설비 장치들이 개발되고 T.A.B가 독립 업역으로 나타난 것은 기술이 발전해서가 아니라 고정관념에 묶여 발걸음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법규의 제한을 헤쳐 나가기 위한 몸부림의 산물이다. 

그런데 고정관념은 스스로 만들고 키워나가는 것이다. 소방 바깥에서는 아무도 그런 고정관념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될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거실제연의 문제는 소방분야 단독으로 해결할 수가 없고 공조와 제연의 덕트설계가 통합되어야 한다. 

공조와 소방이 완전히 분리되어 별개로 설계하는 관행은 아마도 우리뿐일 것이다. 유럽도 미국도 일본도 덕트는 통합개념으로 설계한다.

이러한 분리의 원인은 기술적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업역 다툼의 결과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고 표방하는 사명감에 진정성이 있으려면 공조와 제연 간에 진지한 협조가 이뤄져야 하는데, 그 안전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소방의 것이다. 

그러나 설비와 소방 업역을 모두 가진 대형 설계사무소조차 제연설계를 통합적으로 수행하지 못하는 실정은 참으로 뼈아프게 부끄러운 일이다.

제연덕트를 공조와 겸용하는 데는 시스템 작동 문제 말고도 드러나지 않는 또 다른 이점이 있다. 

제연설비는 평소 운전하지 않기 때문에 성능 상태를 파악할 수가 없다. 겨우 매년 두 번 하는 외관점검으로 상태 파악이 어찌 가능할 것인가? 

그러나 공조 설비는 상시 가동이기 때문에 그 상태가 정확하게 파악될 뿐 아니라 문제 발견 즉시 조처가 이루어진다. 

냉난방이 마비되면 수리에 한 시간도 안 걸리지만 소방전용 설비에 문제가 발견되면 정비하는 데 며칠이나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그뿐 아니라 오래 가동하지 않는 시설에는 필연적으로 먼지가 앉게 마련인데, 그 먼지가 분진화재의 주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자칫 독립 제연덕트가 화재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덕트 시설은 자주 운전해야만 시설의 건전성과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 

차압제연의 목적은 피난경로를 보호하는 것이다. 비상용이나 피난용도의 승강기 승강로를 보호하고 피난계단실을 보호하기 위해 연기가 못 들어오도록 가압을 하는데, 승강로나 계단실을 직접 가압하는 것이 방호목적의 본질에 가장 충실한 것이다. 

또한 연돌효과에 대해서도 샤프트를 외부의 찬 공기로 치환(purge)해 주는 것이 이제까지 나온 가장 좋은 대책이다.

화재신호 연동으로 제연설비는 즉시 자동으로 가동되지만 피난이 시작되기 전에는 모든 출입문이 닫혀있어 제연구역에 과압발생이 불가피하다. 

출입문 개방저항은 피난이 시작되어 제일 처음 문을 밀어서 여는 사람이 가장 크게 느낀다. 바로 그 시점에 과압이 없도록 해야 하는데, 그 시점에 실제로 필요한 풍량은 송풍기 설계풍량의 1/5도 안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송풍기 급기량을 대폭 줄여야 한다. 

그 방법으로 댐퍼를 조여 억제하거나 회전수를 줄이는 방법을 많이들 쓰고 있는데, 송풍기는 토출풍량이 너무 억제되면 서징이 발생하고 회전수도 지나치게 감소시키면 송풍기 운전이 불안해진다. 

또한 세계적으로 급기계통 말단에 사용하는 우리만의 특수한 장치가 있는데, 그것은 부속실마다 설치하는 자동차압댐퍼다. 이 장치는 층별 부속실의 상황이 일률적이지 않기 때문에 각 부속실마다 급기를 독립적으로 조절하기 위한 장치다. 

어떤 방식으로든 부속실 차압을 기준으로 급기량을 자동제어하게 되면 송풍기와 자동차압댐퍼의 자동조절 기능이 서로 간섭하여 풍량조절 기능이 교란된다.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는 급기계통(즉 샤프트)의 상단에서 잉여공기를 배출하여 샤프트 내부 압력을 안정시키는 것이 표준이므로 급기풍량을 줄이지 않고도 정상적인 차압을 조성할 수 있다. 

이러한 원론적 방식으로 시스템을 구성하면 부속실별 조절기능은 자동차압댐퍼 하나만으로 감당하게 되니 시스템의 안정적 운전이 보장된다. 

유럽이나 미국에 자동차압댐퍼가 없어도 차압 조절에 문제점이 노정되지 않는 이유는 샤프트 내부 압력이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배출설비에 대해서도 고정관념을 벗을 필요가 있다. 아파트의 경우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논의로써 방연풍속의 필요성과 조성방법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아파트 거실마다 배출설비를 하기는 어려우나 계단실을 가압하면 부속실에서 배출하여 계단실(제연구역) 출입문에 방연풍속을 조성할 수 있다. 층별 부속실 가압에서 나타나는 대부분의 문제를 계단실 가압으로 해결할 수 있다.

소방시설 성능에 대한 종합정밀검사는 모든 소방설비가 대상이지만 제연설비는 외관검사만 해도 문제가 없다. 그 신묘한 현실의 솔직한 이유는 제연설비의 성능이 안 나오기 때문이다.

막대한 돈을 들여 건물의 유효공간을 잠식하며 평면구조를 복잡하게 만드는 설비의 성능을 아무도 안 믿는다. 100점짜리 해법이야 없겠지만 90점짜리라도 만들려면 기술 행위에 기득권과 이해관계를 내려놔야 한다. 

일단 제연설비도 매년 한 번쯤은 풀가동 시험을 해야 한다.

제연설비는 건물구조와의 정합성도 필수적으로 확보되어야 한다. 즉 제연설비가 가동할 때에는 제연구역의 모든 문이 닫혀야 적정 차압을 조성할 수 있다. 그러려면 부속실에서 피난계단으로 나가는 출입문은 항상 닫혀있거나 화재 시 자동적으로 닫혀야 한다. 이것은 방화문의 건축법적 정의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 준공된 지 10년 이상 된 아파트의 상당수가 부속실(겸 승강장)에서 계단실로 나가는 방화문의 도어클로저가 용융퓨즈형이어서 불이 와서 닿아야만 녹아떨어진다.

방화문이 닫히지 않으니 방화구획도 없고, 가압 공기는 모든 층에서 열린 계단실을 통해 1층 주현관의 열린 출입문으로 나가버려서 화재층에 필요 차압을 조성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화재층의 열린 출입문으로 나가는 연기가 계단실을 오염시켜 피난이 불가능하게 되고 부속실(승강장)이 방호되지 않으므로 비상용승강기 또한 무용지물이 된다. 이러한 이유로 아파트 화재 때마다 인명피해가 나오게 된다.

요즘 준공되는 아파트는 자동폐쇄장치가 있어 그러한 문제가 없겠지만 노태우 정부 시절 200만호 공약으로 지어진 아파트 대다수가 그러하며, 16층 미만의 층에는 스프링클러도 없다. 소방설비라곤 사실상 주방에 열감지기 하나밖에 없는 무방비 고층아파트가 전국 아파트의 절반 이상일 것이다.

계단실 출입문이 방화구획이라고 인정된 이상 건축도 소방도 책임 추궁을 받기엔 억울한 측면이 있다. 이것은 국가의 책임으로 화재 시 모든 고층아파트의 계단실 출입문이 닫히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 

법규의 자구적 해석에 충실하였으므로 아무에게도 책임이 없고, 그러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쓸모없는 소방시설을 넘어 불편한 건축구조에 건설비까지 지불하고서도 할 말이 없어야 하는가? 

컴퓨터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모든 계산을 근거가 부정확한 가정을 바탕으로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FDS와 같이 복잡한 시뮬레이션도 개인용 컴퓨터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제연에 대한 시뮬레이션은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해야 한다. 공간 내부의 피난조건에 대해서는 FDS가 강력한 효능을 발휘하며, 제연시스템의 기능과 고층 샤프트의 연돌효과는 CONTAM으로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여러 층의 제연구역 출입문이 여닫히는 고층건물의 복잡한 급기경로나 연돌효과에 대해서는 수작업 계산이 불가능하므로 CONTAM 시뮬레이션은 필수적이다. 제연풍량에 대해서는 수작업 계산을 탈피하여 전적으로 시뮬레이션 결과를 인용해야 한다. 

수작업 계산은 시뮬레이션을 못 하는 상황에서의 궁여지책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상 4차에 걸쳐 제연에 대한 문제의식을 압축적으로 펴 보았다. 시각은 관점에 따라 여러 방향이겠지만, 문제 해결의 의지와 사명감을 하나의 초점에 모으는 것이 우리 소방 엔지니어링의 과제다.

2024년 5월20일

김진수 한국소방기술인협회 회장

소방 제연설비 ‘설비와 소방 불통, 합리적 설계 못하는 것’

김진수 한국소방기술인협회 회장

윤성규 기자   입력 2024.05.13 08:15 

출처 : 세이프투데이(http://www.safetoday.kr)